공사 중인 신앙! Der Glaube im Bauzustand!

2013년 10월 29일

미켈란젤로가 길을 가다 큰 바위 덩어리를 놓고
마당에서 치우는 일로 고민에 빠진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자기가 그 돌을 가져가겠다고
제의를 합니다. 몇 년이 지난 후 그 돌의
주인은 미켈란젤로로부터 초대를 받아 그 집을
방문하였다가 깜짝 놀라게 됩니다.
거기엔 너무나 멋진 예수의 상이 서 있었고
그것은 그에게서 가져온 돌이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그 쓸모 없는
바위가 이런 작품이 될 수 있었느냐고 묻자,

복을 복되게 하는 사람들! Den Segen seelig machen!

복을 복되게 하는 것은 신앙입니다.

복을 화되게 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화를 복되게 하는 것이 주님의 제자도입니다.

그리스도적 사랑과 은혜가 문제의 답입니다.

 

 

한 소년이 열차에서 화학실험을 하다가 흔들리는

바람에 불이 났습니다. 화가 난 승무원은 그를 밀

쳤고 열차에서 떨어진 그는 귀를 다친 후 평생을

어두운 귀로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천 가지

이상의 발명품을 만들어 내게 되는데 그가 바로

에디슨입니다.

 

 

기자가 질문합니다. ‘귀가 어둡게 되어 답답하거

나 그렇게 만들어버린 승무원이 밉지 않습니까?‘

이에 ‘아니요 오히려 어두운 귀로 인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할 뿐입니다..’

 

감사는 재앙마저 도망가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세상엔 복을 복되게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복을 가지고도 화를 만드는 사람도 있고 재앙을

가지고 복을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서 팔리고 노예상에게서 팔리고

심지어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깊은 감옥으로 떨

어지면서 꼬인 인생을 살지만 그는 오히려 그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을 만드는 삶을 삽니다.

 

 

 

불레셋에게 빼앗겼던 법궤가 벧세메스로

돌아오게 됩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사람들은

속죄소를 열어 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갑자기

오만 칠십 명이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두 돌판은 하나님의 법과 공의를 상징합니다.

그 위에 속제소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공의

보다 위에 있다는 의미이며 법의 심판보다는

사랑의 용서를 통해 구원할 것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뒤집는 행위를 한 것이기에 크게

징계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속의 언약을 확고히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벧세메스 사람들은 축복을 재앙으로

만들더니 더 큰 문제를 만들어 냅니다.

이웃의 기럇여아림 사람들에게 법궤를 가져

가라고 통보합니다.

간단한 실수로 사람이 수만 명이 죽은 사실을

기럇여아림 사람들도 잘 알기에 그 심적 부담은

엄청났을텐데도 그들은 침묵하며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옵니다.

엘르아살을 구별하여 이십년동안이나 잘 모시게

되었고 큰 복을 받습니다. 아울러 이스라엘 민족

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는 동기를

마련합니다.

 

 

후일 오벧에돔도 웃사의 사건을 알면서 비숫한

반응으로 법궤를 모셨다가 큰 복을 받습니다.

 

 

사실보다 사실에 대한 반응이 더 큰 문제를 만

들 수 있습니다. 복을 복되게 만드는 평균선을

지키는 것은 제자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입니다.

 

삼상6:19-7:2 / 주일설교 새벽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