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 행복! Die paradoxe Glueckselichkeit!

2013년 10월 29일

이탈리아의 바이올리스트 파가니니가 격조 높다는 청중을 상대로 연주를 하기 위해 초라한 옷을 입고 섰습니다.
활을 당기자 현 하나가 탁하며 끊어졌습니다. 청중은 속으로 웃었습니다.
다시 활을 당기자 또다시 현 하나가 끊기더니 다시 활을 당기자 현은 끊어졌고 청중은 와~아 소리내어 웃어버렸습니다.
 
이제 단 하나의 현과 파가니니만 무대에 남았습니다.
모두들 오늘 연주는 참담하게 끝났다고 여기며 자리를 뜨려하자, 파가니니는 한 줄 남은 현에 활을 당기며 연주를 시작합니다. 굵고 깊은 선율은 듣는 이들의
침묵과 긴장을 불렀고 하나 둘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줄이 끊긴 것은 불행이나 그래서 더 큰 감동과 행복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 잃고도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열 자녀와 재산과 건강과 아내를 잃습니다.

그러나 그는 찬양을 불렀고 깊은 사색과 묵상을 통하여

자신과의 대화를 넘어 절대자와의 변론을 통해

귀로 듣던 진리를 눈으로 보는 경지에 오르게 되더니

마침내 갑절의 축복이 따라오게 됩니다.

바울은 그토록 추구하던 명예와 지식과 가문과

영화스러운 것들을 배설물처럼 내쳤지만 더 큰 행복과

만족과 충만으로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 병들고도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영계의 삼층층까지 올라간 신비의 체험을 가진 바울에겐

창피할 정도의 심각한 몸에 병이 있었습니다.

전도의 문이 막힐 것을 염려한 그는 세 번씩이나 특별기도를

올리지만

질그릇의 반전! Die ueberraschende Wende der irdenen Gefaesse!

새 버전의 맹자 어머니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녀가 장의사 집 근처로 이사 가자 아이가 장의사처럼

놀고, 시장으로 갔더니 장사꾼처럼 놀고, 학교 근처로

갔더니 공부에 열중했다는 내용이 원래 내용인데

그녀가 남달리 현숙한 여인인데 생각없이 그리했겠느냐

필시 깊은 생각이 있었을 거라는 겁니다.

장의사 근처에 간 것은 아들 맹자에게 인생의 종말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시장으로 이사를 간 것은 그곳에서

피 말리는 삶의 생존경쟁을 깨우치고 다시 학교로 이사

간 것은, 그렇기 때문에 잘 배워야 무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기 위함이었다는 해석입니다.

 

지식을 담아주기 전에 삶의 실존적 지혜를 먼저 담아

주고자 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알게 합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자각하는 것은 매우 값진 지혜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며 인생의 한계를 토로했고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라며 다윗은 기도했고

셋은 에노스를 낳고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을 찾으며

구원이 필요한 인생임을 자각합니다.

 

신구약 성경을 넘나들며 진리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던

바울 사도는 인생의 실존을 질그릇으로 이해했습니다.

철 그릇 금은그릇 청자 같은 값지고 튼튼한 그릇도

많은데 왜 하필 깨지기 쉽고 볼 폼 없는 질그릇으로

표현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릇이란 무언가를 담는 도구입니다.

보배를 담은 질그릇..생각만으로도 극적입니다.

성경은 그 보배의 의미를 이렇게 진술합니다.

– 하나님이 곧 보배며, 욥22:25

– 예수 그리스도가 참 보배며, 고후4:7

–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곧 보배며, (벧전1:19).

– 믿음이 곧 보배며, 벧후1:1절,

–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보배임을 밝힙니다. 사 33:6절

 

보배를 가진 자는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선언합니다.

 

이 보배를 소유하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마13:44-46

 

보화는 수고 없이 발견한 것이었고

진주는 열심히 찾아 나섰기에 찾아 얻은 것입니다.

구원은 은혜로 거저 받지만 진주처럼 빛나는 믿음은

구도자처럼 대가를 지불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질그릇의 반전과 영광과 승리는 그릇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있는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로로

말미암은 것을 깨닫는데 있으며 깨지기 쉬운 존재를

인정하는 겸손함에 있습니다.

 

고후4:7-15 / 주일설교묵상

내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 Gott, der in mir Gutes schafft!

착한 사람은 만남으로 행복하고 곁에 둠으로

선을 이루고 함께함으로 축복을 만들어 냅니다.

 

한 노인이 쓸쓸히 집 앞 잔디를 손보고 있는 데

마침 건강을 위해 걸어 출근하던 한 교수가 그와

눈이 마주치자 눈인사를 합니다.

두 사람은 어느 덧 가까워졌고 교수는 틈날 때 그

노인을 찾아가 잔디도 깎아 주고 커피도 마시며

2년을 넘게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 노인을 볼 수 없자 강의

가 끝난후 그 집을 방문하였는데 전날 밤 그 노인

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게 돕니다. 급히

장례식장에 찾아가 조문을 하면서 그 외롭게 여생

을 마친 분이 바로 코카콜라 회장을 지낸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저의기 놀라게 됩니다.

한 유족이 그에게 다가와 ‘회장님이 당신에게 남기

신 유서입니다!’라며 봉투를 건네자, 그는 그 유서를

보고 더 놀라게 됩니다.

 

‘나의 친구 레이니..고맙네. 그동안 2년도 넘게 내가

외로울 때 날 찾아주고 대화의 벗이 되어준일..함께

커피를 마시며 나눈 대화들..특히 잔디도 깎아준 일..

이 모든 것 고마웠습니다..작지만 내 마음을 담아

당신에게 25억달러와 코카콜라 주식 5%를 유산으로

드립니다.’

 

그는 유산으로 받은 전액을 자신이 몸담고 있던

에모리대학 발전기금으로 내놓았고 그의 공로를 인

정해 그 대학의 총장으로 추대됩니다. 그 교수가 바

로 학자며 목사며 정치가인 주한미국대사였던(1993-

1997) 제임스 레이니입니다.(새벽편지에서인용)

 

 

바울 사도에게 순교의 시간을 느낄만한 징조가 보일

가장 어려운 때 그는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 교우들을

향해 보낸 서신에서 유독 기쁨을 많이 강조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으로 성도의 실존을 밝혀줍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

 

– 내 속에 주의 영이 살아 계신다는 것

– 주의 영이 내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다는 것

– 주의 방법으로 주님의 때에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

 

 

초대교회사를 주도해 나갔던 인물들 중,

가장 특이한 분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그의 존재를

한 구절로 정리한 말씀이 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더하더라’ 행11:24

 

 

주의 부르심을 받고 일할 사람은 누구나 성령과 믿음

과 지혜와 체험과 간증이 넘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그 모든 것을 갖추고 있음에도 그보

다 앞선 그의 신앙적 덕목을 ‘착함’에 두고 있습니다.

 

마태도 같은 맥락에서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로..’

충성된 자가 되기 전,

착한 사람이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었기에

교회가 수많은 사람들로 차고 넘칠 때 누가 무슨 말

하지 않아도 매일 떡을 떼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며

너무도 많은 재정이 필요함을 알기에 지나치지 못하

고 자기 재산을 처분하여 사도들 발 앞에 둡니다.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지만 아직 그의

개종이 의심받는 처지에 있을 때 모두가 경계하는

그를 찾아가 위대한 사도로 만든 사람이 바로 바나

바입니다. 그것은 주의 영이 그의 착한 심성을 사용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6:9

 

 

이 시대는 착한 사람이 버티기 힘든 세상이라고

말할 만큼 타락해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은 아무리 교묘해도 패배의 영입니다.

 

영적세계에서의 가장 강한 힘은 진실과 착함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속에 내주하셔서

그의 착함을 주도해 가시기 때문입니다.

 

 

빌1:6 / 주일설교 새벽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