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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Liebe stellet sich nicht ungebärdig(unhöflich)!

12월 17, 2017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Liebe stellet sich nicht ungebärdig(unhöflich)!

독일 월드컵축구대회 결승전에서 프랑스팀 지네딘 지단이 이테리 선수
마르코 마테라 치를 해딩으로 가슴을 들이받어 쓰러뜨린 후 퇴장 당한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후일에 그 사연이 밝혀졌는데, 마테라치가
공을 놓고 지단과 몸 싸움을 하
는 과정에서 지단의 유니폼을 잡아당깁니다. 이때 지단이 짜증스럽게
한 말이, ‘내 유니품을 가지고 싶으면 경기 끝나고 줄게..’라고
좀 무례한 말을 내 뱉자, ‘아니 네 유니폼 말고 네 누이를 갖고 싶다’
라며 더 무례한 말을 쏟아버립니다. 그래 좇아가 헤딩으로 받아버렸다
고 합니다. 누구라도 열 받고 한방 먹일만한 말입니다.

박준 시인의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며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
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 남는다’고 했지만, 무례한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상할 수 없는
황당한 사건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 식당에서 거부당한 한국인 관광객
베를린 중심가에 있는 한 식당에 몇 명의 한국인 관광객이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왔다가 밥도 먹지 못하고 거부당한 황당한 사건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단체 주문을 받아 요리를 하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되자
몇차례나 서빙하는 직원을 불러 음식이 왜 이리 늦느냐고 닥달을 하는
과정에서 해서는 안될 ㅆ 자를 써가며 언어적 무례를 범한 것입니다.
식당 주인은 정중히 그들에게 나가 줄 것을 요청하기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스위스의 모 호텔에서는 한국인 관광객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국인 관광객 한 그 룹이 하루 밤을 자고 지나갔는데, 다음날 청소부가
들어가 보니 방안에 라면봉지며 소주병에 방을 거의 쓰레기 수준으로
만들어 놨는데, 냄새를 제거하는데 거의 한 주간이 걸려 다음 손님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무례함은 어디서나 환영받지 못합니다.

* 무례한 제자들과 유례한 제자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진리를 듣고 신앙을 체험하며 기적을 맛본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주님 앞에 무례한 행동을 합니다. 길가면서 서로
자기가 크다며 직분을 놓고 다툼을 벌입니다. 스승 앞에서 참 무례한
언어와 행동들입니다. 메시야라 고백했으면서도 주님이 고난 당하자 모두
도망을 치거나 저주하며 모르는 분이라며 부인을 합니다. 가륫인 유다는
예수님 면전에서 옥합을 깨어 섬기는 마리아를 노골적으로 비난을 합니다.
얼마나 무례한 언사입니까..도마는 주께서 십자가를 지시느라 난 상처를
찔러보는 무례를 범하기도 하고 다른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오히려
의심도 합니다. 참 예의가 없는 무례한 자세들입니다.
그런가 하면, 마리아는 옥합을 깨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씻으며 경외심을 드러냅니다. 최고의 예를 드린 것입니다.

* 무례한 인간에게 유례하신 하나님
살아있는 아버지께 유산을 달라하여 큰 무례를 범한 아들..그럼에도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재산을 내어주어 그의 생각을 존중해 줍니다.
그 소중한 재물을 모두 탕진한 후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탕자를 저
건너편 먼발치에서도 그를 알아보고 그를 영접한 아버지는 목욕을
시키고 좋은 옷을 입히고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합니다. 무례한 아들에게
유례한 자세로 받아 주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
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주님은 문열어주지 않아도
들어가실 수 있는 부활체이십니다. 그럼에도 문을 노크하시는 것은 문
열어 영접하거나 문 닫고 거부할 자유를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배려이며
예로서 우리를 대하시는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백번 고쳐 우시더라도
우리의 자유 의지를 꺽거나 강제하지 않으시려는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 바울 사도의 무례에 대한 이해와 극복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무례한 사람이었습니다.
스테반의 순교 현장에서 가편 투표를 했고 살기가 등등해서 예수를 신앙
하는 성도들을 잡아 옥에 가두는 무례한 일을 즐겨한 분입니다.
그러나 다메석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 ‘사울아, 사울아..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그런 음성을 들었을 때,
자기는 지금 껏 예수를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는 자로서 매우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자녀를 핍박한 무례함 이 곧 주님을
핍박한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그가 모든 것을 배설물로 저버리고 주님 따라가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게 된 것은 무례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 해주시기 위하여 그 모든
죄값을 고스란히 대신 치루신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큰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행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무례를 극복하는 길은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고 깊이
헤아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랑의 속성은 무례할 수가 없으며 친절을
넘어 지극한 예로 대할 수밖에 없고 가깝고 친하다는 이유가 아무리 커도
무례함이 사랑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랑과 예의는 정비례합니다.

무례한 사람에게 무례한 것은 상식입니다.
무례한 사람에게 친절한 것은 덕입니다.
무례한 사람을 깨우치는 것은 기적입니다.
무례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고전13:5 / 주일설교 새벽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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